[멀리서 다가오는 斷想] 뉴현대판 고려장

  • 등록 2021.11.23 07:46:0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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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김삼기 / 시인, 칼럼니스트

    

어제 임진강 근처에 사는 80대 노인을 만나 장시간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었다.

 

노인의 임진강 근처 전원생활은 서울에서 꽤나 성공한 아들이 공기 좋고 한적한 곳에 전원주택을 지어드릴테니 가기서 사시면 어떻겠냐고 물어보면서 시작되었다고 했다.

 

10년 전 당시 노인은 친한 친구가 위암 수술을 받고 치료차 요양원으로 가는 것을 보고, 그래도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선뜻 전원생활을 택했다고 했다.

 

그런데 최근 몇 달 사이에 임진강 주변에 전원주택이 많이 지어졌는데, 대부분 80대 노인들이 입주했다는 것이다.

 

서울에서 잘 나가는 자식들이 병 들고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요양원으로 보낼 수 없어, 공기 좋고 지자체의 의료서비스도 좋은 임진강 근처를 택했다는 게 노인의 설명이었다.

 

언젠가 임진강 주변의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는데, 그 이유가 젊은이들이 떠난 자리를 외부에서 노인들이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.

 

나는 노인과 대화중에 자식들이 부모를 임진강 근처로 보낸 이유가 부동산투기 목적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.

 

어제 만난 노인도 10년 전 2억에 산 땅이 지금은 10억이 넘는다면서 최근 부모를 임진강으로 보낸 자식들도 아마 땅 값이 오를 것을 계산해서 이곳을 택했을 것이라고 했다.

 

어제 만난 노인이 직접 표현하진 않았지만, 임진강 근처로 몰려드는 노인들이 뉴현대판 고려장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.

 

오래 전 강원도 두메산골 펜션에서 12일 보낼 때도 펜션 주인은 주변에 있는 별장을 가리키며 서울에서 유명 연예인들이 부모를 고려장시키고 있다고 지적했었다.

 

고려장은 고려시대에 늙은 부모를 산 채로 버리던 악습으로 알려져 있는데, 사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왜곡되었다고 한다.

 

고려시대의 법률을 보면 최고의 형벌이 반역죄와 불효죄였는데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고려장은 역사적인 사실이라기보다 노인을 존경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.

 

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고려장이 자꾸 언급되는 이유는 고려장이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고 있는 현 시대에 대한 강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.

 

오래전부터 현대판 고려장으로 불리고 있는 곳이 있는데, 바로 요양원이다.

 

젊은 맞벌이 부부가 직장 등의 생활전선에서 바쁘게 살다보니 부모를 집에서 모실 수 없어 요양원에 보낼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.

 

요양원에서는 같은 처지의 노인들이 많아 서로 위로도 되고 말동무도 되고 의지할 수 있어 요양원이 노인들의 요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.

 

요즘 요양원은 집과 같이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자유가 있고 노인들이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.

 

정부가 나서서 요양원이 더 이상 현대판 고려장으로 남지 않도록 법을 만들고 행정지원도 아낌없이 해야 할 것이다.

 

앞으로는 점점 더 노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 많아지면서 뉴현대판 고려장도 더 많이 생길 것이다.

 

그러나 임진강 근처처럼 새로운 형태로 노인들이 모이는 곳이 뉴현대판 고려장이 되지 않아야 우리 사회가 더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우리 정부가 명심해야 한다.

 

행복한 장수의 비결은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한 어제 만난 노인의 초라한 뒷모습이 꽤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.

 

[단상]

노인들이 모이는 곳에 우리 사회가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.

 

 

 

물류on뉴스 기자 kmpress@daum.net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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